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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화백 탄생 100주년, 그는 여전히 숨 쉰다

박수근 화백 탄생 100주년, 그는 여전히 숨 쉰다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가로 평가되는 박수근 화백이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다음달 16일까지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열립니다. 이번 전시회에는 박수근 화백이 남긴 15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는데요.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둘러보면서 작고하신 후에도 명성이 더해가는 박수근 화백의 인생과 작품 세계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전시회 정보

전시명: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

일시: 2014.1.17(금)~3.16(일)

장소: 가나인사아트센터(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88)

관람비: 일반 10,000원, 초등학생 6,000원

  

 

박수근 화백 (사진:양구문화관광)

 

 

박수근 화백은 누구인가

박수근 화백은 1914 년 2월 강원도 양구군 양구면에서 1남 3녀 중 삼대 독자로 출생했습니다. 어릴 적, 밀레의 <만종>을 원색 도판으로 처음 본 박수근 화백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박수근 화백은 “하느님, 저도 이 다음에 커서 밀레와 같은 화가가 되게 해주옵소서”라고 기도했다고 전해집니다.


박수근 화백은 독학으로 집 주위 산천, 농가의 여인, 나물 캐는 소녀를 연필스케치와 수채화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1932년 18세의 박수근 화백은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이하 조선미전) 서양화부에 <봄이 오다>를 출품하여 첫 번째 입선을 수상합니다. 이후에도 <일하는 여인>, <봄>, <농가의 여인>, <여일> 등의 작품으로 연이어 조선미전 입선됐고요. 1940년, 김복순 여사와 결혼한 후 박수근 화백은 평안남도 도청의 서기로 일하면서도 최영림, 장리석, 황유엽 등과 서양화 동인 그룹 주호회를 창립하고 해마다 동인전을 가졌습니다.


1944년 박수근 화백은 평양에 있다가 8.15 해방을 맞이한 후, 도청 일을 그만두고 당시의 강원도 금성으로 가서 금성중학교 미술교사로 부임합니다. 하지만 박수근 화백은 6.25 전쟁 후 남하했고 서울 창신동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생계가 어려워져 화가 이상우가 운영하던 혜화동 화방을 통해 그림을 판매하기 시작하죠. 그러다 미군 CID(범죄수사대), 미8군 PX에서 그림 그리는 일을 했는데 이때부터 소박한 주제와 명확한 윤곽선, 흰색과 회갈색, 황갈색 색채, 그리고 명암과 원근감이 나타나지 않는 독특한 개성이 그림에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작가로서의 삶을 살았고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국전’ 등의 대회에서 입선합니다. 


박수근 화백은 ‘대한미협전’, ‘동서미술전’, ‘한국현대회화전’, ‘현대작가 초대미전’, ‘국제자유미술전’ 등 국내를 비롯해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열린 전시회에 잇달아 작품을 출품하며 주목을 받게 됩니다. 1962년에는 마닐라에서 열린 ‘한국현대미술전’에 초대됐고, 이 무렵 그의 예술적 위치와 평가는 매우 높았습니다. 하지만 1965년 박수근 화백은 간경화와 응혈증이 크게 악화되면서 결국 51세의 나이에 집에서 운명합니다. 그 이후로 박수근 화백을 기념하기 위한 박수근 기념전이 지속적으로 열려왔고 현재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이르렀습니다.


생전에 박수근 화백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옛 석물 즉 석탑, 석불 같은 데서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원천을 느끼며 조형화에도 도입하고자 애쓰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끼 낀 화강암의 질감을 연상하게 하는 마티에르 기법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만의 개성과 예술 세계를 구축합니다.


그는 당시 전쟁의 잔재와 후유증으로 가난하고 헐벗던 우리나라의 서민들을 주로 그렸습니다. 시장 사람들, 빨래터의 아낙네들, 절구질하는 여인 등을 말이죠. 이런 점에서 박수근 화백의 작품은 그 당시의 단면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시골의 집, 나무, 노인 등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순수하고 진실했기 때문인지 지금까지도 그의 작품을 보면 그 작품 자체가 전달해주는 호소력 때문에 감동을 받게 됩니다.


 

 

박수근, 빨래터, 50.5x111.5cm, 캔버스에 유채, 1960년대 (사진:가나인사아트센터)

 

 

서민의 화가, 박수근의 작품세계 속으로

‘국민화가’라고 불리는 한국근대미술의 대표 작가, 박수근의 탄생 100주년 그리고 서거 50주년을 맞이하여 박수근 회고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번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는 박수근 화백이 남긴 300여 점의 유화 작품 중 대표작 100여 점과 드로잉 및 수채화 50여 점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박수근 화백의 작품들은 가나인사아트센터의 1층부터 4층까지 전시되고 있습니다. 1층은 ‘창신동에서’, 2층은 ‘시장 사람들’, 3층은 ‘정다운 사람들’, 4층은 ‘나목’을 주제로 한 작품이 주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전시회장을 둘러보면 <청계천>, <판자촌>, <집골목> 등 가난한 삶의 애환이 담긴 그림들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한국전쟁 직후, 우리의 어머니들이 가사일과 노상, 행상 등을 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모습을 그림을 통해 살펴볼 수 있죠. 특히 <노상>이라는 작품은 고운 얼굴선과 작은 이목구비를 가진 여인이 노상에서 장사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요. 따뜻한 심성이 투영되어 있어 모성과 생활력을 가진 당시의 여인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박수근 화백의 그림 속 사람들은 정면을 보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표정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묘하게 깊은 애환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박수근 화백의 그림을 소장했던 미국인 존 릭스는 “박수근 그림 속 사람들 얼굴에는 표정이 없지만 한참 보고 있으면 사람들의 소박한 표정을 상상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4층 전시관을 둘러보면 박수근 화백이 ‘나목’을 소재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의 그림 속 나무들이 푸른 빛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노목과 어린 나무>에서만 어린 나무에 새순이 돋아난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소설가 박완서 씨는 박수근 화백의 그림을 보고 “그가 그린 나목을 볼 때마다 그 해 겨울, 내 눈엔 마냥 살벌하게만 보이던 겨울나무가 그의 눈에 어찌 그리 늠름하고도 숨 쉬듯이 정겹게 비쳐졌을까가 가슴이 저리게 신기해지곤 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유홍준 교수는 “박수근의 그림에서는 나무든 인물이든 현재의 모습은 고단한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조용히 삶의 새 봄을 기다리는 희망이 애잔히 있다. 그것이 그 시대를 산 사람의 참 모습이다”라고 평했고요.


박수근 화백은 당시 서민의 실상을 가감 없이 그리면서 그 아픔에 동참했습니다. 이번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은 1940~1960년대의 시대적 한계와 분위기를 그림으로 녹여낸 박수근 화백의 고귀한 인간애를 느낄 수 있는 전시회가 될 것입니다.

 

 

 

전시회장 별도 코너에 마련된 박수근 화백 관련 자료와 상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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